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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薛蘭), 이봉(李封)이 거야(鉅野-연주 산양군 거야현)에 주둔했다. 태조가 이를 공격하자 여포가 설란을 구원했는데, 설란은 패하자 여포는 달아났고 마침내 설란 등을 참수했다. 
 여포는 다시 동민(東緡-산양군 동민현)에서부터 진궁과 함께 만여 명을 이끌고 와서 싸웠다. 이때 태조의 군사들이 적었는데 복병을 설치하고 기병(奇兵-기습부대)을 풀어 공격하여 이를 대파하니 여포는 밤중에 달아났다. 
태조는 다시 정도(定陶)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군을 나누어 여러 현들을 평정했다. 여포는 동쪽으로 유비에게로 달아났는데, 장막은 여포를 뒤따르면서 동생인 장초(張超)에게 가속들을 이끌고 옹구(雍丘-진류군 옹구현)를 보전하도록 했다.
가을 8월, 옹구를 포위했다. 
겨울 10월, 천자가 태조를 연주목(兗州牧)으로 임명했다.
12월, 옹구가 무너지고 장초는 자살하였고 장막의 삼족을 멸했다. 장막은 원술에게로 가서 구원을 청하려다 그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태조는 연주가 평정되자 동쪽으로 진(陳-예주 진국)의 땅을 공략했다. 
 이 해 장안에 난이 일어나 천자가 동천(낙양으로 천도)하려했으나. 호위군이 조양(曹陽)에서 (이각군에게) 패하자 황하를 건너 안읍(安邑)으로 행차했다.
 건안 원년(196년) 봄 정월, 태조군이 무평(武平-예주 진국 무평현)에 임하자 원술이 임명한 진상(陳相-진국의 국상) 원사(袁嗣)가 항복했다. 
 태조가 장차 천자를 영접하려 하자 제장들 중에 간혹 의심하는(반대하는) 자가 있었으나, 순욱, 정욱이 권하자 조홍(曹洪)을 보내 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천자를 영접하도록 했다. (그러나) 위장군(궁성의 수비와 황제호위) 동승(董承)이 원술의 장수 장노(萇奴)와 함께 험준한 곳을 막고 있었으므로 조홍은 진군할 수 없었다.

 여남과 영천의 황건적 하의(何儀), 유벽(劉辟), 황소(黃邵), 하만(何曼) 등은 각각 그 무리가 수만에 이르렀는데, 처음에 원술에 호응했다가 다시 손견에 붙었었다. 2월, 태조가 진군하여 이를 정벌하고 유벽, 황소 등을 참수하자 하의의 무리가 모두 투항했다. 천자가 태조를 건덕장군(정벌을 담당하는 잡호장군)으로 임명했다.

여름 6월, 진동장군(반란진압 업무)으로 승진하고 비정후(비정쪽 제후인듯)에 봉해졌다. 

 가을 7월, 양봉(楊奉), 한섬(韓暹)이 천자를 모시고 낙양으로 돌아왔고, 양봉은 따로 양(梁-사례 하남윤 양현)에 주둔했다. 

마침내 태조가 낙양에 당도해 경도(京都)를 호위하자 한섬은 달아났다. 천자가 태조에게 절월(도끼류로 권한을 줄때 줌)을 내리고 녹상서사(궁정의 문서를 맡던 관직, 내각총리같음)로 삼았다. 

낙양이 잔파(잔인하게 부서짐)되었으므로 동소(董昭) 등은 태조에게 허(許-예주 영천군 허현)에 도읍할 것을 권했다. 

 9월, 천자가 환원(轘轅)을 나와 동쪽으로 갔다. 태조를 대장군(병마의 대권을 관장한 최고의 무관직)으로 삼고 무평후(무평의 제후작위?)에 봉했다. 천자가 서쪽으로 천도한 이래 조정이 날로 어지러워지다 이때에 이르러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제도가 비로소 바로 세워졌다.
 
 
천자가 동쪽으로 향하자 양봉은 양(梁)현에서부터 이를 요격하려 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겨울 10월, 공(公-조조. 쭉 태조로 호칭하다가 헌제를 영접한 이때부터 공公으로 표기)이 양봉을 정벌하니 양봉은 남쪽으로 원술에게로 달아났고 마침내 양봉의 양(梁)현에 있던 둔영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원소는 태위(삼공중에 하나로 주로 군사담당)에 임명되자 그 반열이 공(公-조조)의 아래에 있음을 수치로 여겨 직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공(公)이 대장군 직을 고사(固辭-굳게 사양함)하고 원소에게 양보했다. 천자가 공(公)을 사공(삼공중 하나로 주로 토목과 관개를 담당)과 함께 거기장군(대장군 밑 7장군중에 2번쨰)에 임명했다. 
 
 
이 해, 조지(棗祗), 한호(韓浩) 등의 의견을 채용해 처음으로 둔전(屯田,둔전은 병사들로 하여금 땅을 경작하게 하여 군량을 만드는것)을 일으켰다
여포가 유비를 습격하여 하비를 차지하자 유비는 달아나 공에게로 왔다. 정욱(程昱)이 공(公)을 설득하며 말했다, 
“살펴보건대 유비는 웅재(雄才)가 있고 민심을 크게 얻었으니 끝내 남의 아래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빨리 도모하는 것이 낫습니다.” 
공(公)이 말했다, 
“이제 바야흐로 영웅들을 거두어들일 때인데, 한 사람을 죽이고 천하인의 마음을 잃는 것이니 불가하오.” 
장제(張濟)가 관중(關中)에서 남양(南陽)으로 달아났다. 장제가 죽자 그 종자(從子-조카)인 장수(張繡)가 그 무리를 거느렸다. 

2년(197) 봄 정월, 공(公)이 완(宛-형주 남양군 완현)에 이르자 장수가 항복했는데 그 뒤 이를 후회하여 다시 모반했다. 공(公)이 더불어 싸웠으나 군이 패하고 날아온 화살에 맞았고, 장자(長子-큰 아들) 조앙(曹昂), 제자(弟子-동생의 아들. 즉 조카) 조안민(曹安民)이 해를 입었다

이에 공은 군을 이끌고 무음(舞陰-남양군 무음현)으로 돌아갔는데, 장수가 기병을 이끌고 와서 노략질하자 공이 이를 격파했다. 장수는 양(穰-남양군 양현)으로 달아나 유표와 합쳤다. 
 공(公)이 제장들에게 말했다, 
“내가 장수 등을 항복시켰으나 실수로 인질을 잡아 두지 않아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소. 내가 패한 이유를 알만 하오. 제경(諸卿)들은 이를 잘 살펴 지금 이후로 다시 패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고 허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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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 3년(192년) 봄, 태조가 돈구(頓丘-동군 돈구현)에 주둔하자 우독(전편 흑산적) 등이 동무양을 공격했다. 이에 태조가 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산으로 들어가 우독 등의 본둔(本屯-본영)을 공격했다

우독 등이 이 일을 듣고 (동)무양을 버리고 되돌아왔다. 태조는 수고(휴고)를 요격(要擊-도중에서 차단하여 공격함)하고 또한 흉노 어부라(於夫羅)를 내황(內黃-위군 내황현)에서 공격해 모두 대파했다

여름 4월, 사도 왕윤(王允)이 여포와 함께 동탁을 죽였다. 동탁의 장수 이각(李傕), 곽사(郭汜) 등이 왕윤을 죽이고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는 싸움에 져 동쪽으로 달아나 무관(武關)을 벗어났다. 이각 등이 조정을 농단했다.

청주 황건의 무리들 백만 명이 연주로 들어와 임성상(任城相-연주 임성국의 국상=태수) 정수(鄭遂)를 죽이고 진로를 돌려 동평(東平-연주 동평국)으로 들어왔다. 유대(劉岱)가 이를 공격하려 하자 포신(鮑信)이 간언했다, 

“지금 적의 무리가 백만이라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 떨고 사졸들은 투지가 없으니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적의 무리들이 서로 뒤따르는 것을 살펴보건대 군에 치중(輜重)이 없고 오로지 약탈로 조달하니, 군사들의 힘을 비축하여 먼저 굳게 지키는 것이 낫습니다. 만약 저들이 싸우고자 해도 싸우지 못하고 또한 공격하려 해도 공격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세력이 필시 흩어질 것이니, 그 후 정예병을 뽑아 요해지를 점거하고 들이친다면 가히 격파할 수 있습니다.” 
 유대가 이를 따르지 않고 끝내 더불어 싸웠으나 과연 죽임을 당했다

이에 포신은 주리(州吏-주의 관리) 만잠(萬潛) 등과 함께 동군으로 가서 태조를 맞이해 연주목을 겸하게 했다. 그리고는 진병하여 수장(壽張-동평국 수장현) 동쪽에서 황건적을 공격했다. 포신은 힘써 싸우다 전투 중에 죽었고 가까스로 이들을 격파했다

포신의 시체를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자 사람들은 나무를 깎아 포신의 형상처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곡(哭)을 했다. 황건적을 추격해 제북(濟北-연주 제북국)에 도착하자 (황건적들이) 항복을 청했다.

겨울, 항복해 온 병졸 30여 만과 남녀 백여만 명 중에서 정예(精銳)한 자를 거두어 청주병(靑州兵)이라 불렀다.
 원술이 원소와 서로 틈이 벌어지자 공손찬에게 도움을 청했다. 공손찬은 유비를 고당(高唐-청주 평원군 고당현)에, 선경(單經)을 평원(平原-평원군 평원현)에, 도겸을 발간(發幹-연주 동군 발간현)에 주둔하게 하여 원소를 핍박했다. 태조가 원소와 만나 이를 공격해 모두 격파했다.

초평 4년(193년) 봄, 견성(鄄城- 연주 제음군 견성현)에 주둔했다. 형주목 유표(劉表)가 원술의 양도(糧道-군량 수송로)를 끊자 원술이 군을 이끌고 진류로 들어와 봉구(封丘-진류군 봉구현)에 주둔하고, 흑산적의 남은 무리와 어부라 등이 그를 도왔다. 원술은 장수 유상(劉詳)을 광정(匡亭)에 주둔하게 했다. 

태조가 유상을 공격하자 원술이 그를 구원하니 더불어 싸워 대파했다. 원술은 봉구(封丘)로 물러나 지켰고 이에 봉구를 포위했는데 맞붙어 싸우기도 전에 원술은 양읍(襄邑-진류군 양읍현)으로 달아났다. 이를 추격하여 태수(太壽)에 당도하자 수로의 물을 터뜨려 성에 물을 끌어들였다. (원술은) 영릉(寧陵-예주 양국 영릉현)으로 달아났고 또다시 추격하자 구강(九江-양주 구강군)으로 달아났다. 

여름, 태조가 정도(定陶-제음군 정도현)로 환군했다.

하비의 궐선(闕宣)이 무리 수천 명을 모으고 천자(天子)를 자칭했다. 서주목 도겸(陶謙)은 그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태산군의 화(華)현, 비(費)현을 차지하고 임성(任城)을 공략했다.

가을, 태조가 도겸을 정벌해 1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도겸은 성을 지킬 뿐 감히 나오지 못했다. 

이해, 손책이 원술의 명을 받아 장강을 건넜는데, 여러 해 만에 마침내 강동(江東)을 차지하게 되었다.
 
흥평(興平) 원년(194년) 봄, 태조가 서주(徐州)에서 돌아왔다. 이전에 태조의 부친 조숭은 관직을 떠나 초(譙)로 돌아갔었는데 동탁이 난을 일으키자 낭야(瑯邪)로 피난했다가 도겸에게 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태조는 원수를 갚기 위해 동쪽을 정벌한 것이다.

여름, 순욱(荀彧), 정욱(程昱)에게 견성을 지키게 하고 다시 도겸을 정벌하여 다섯 성(城)을 함락시키니 공략한 땅이 동해(東海-서주 동해군)에까지 이르렀다. 돌아오는 길에 담(郯-동해군 담현)을 지나는데 도겸의 장수 조표(曹豹)가 유비와 함께 담(郯) 동쪽에서 태조를 요격했다. 태조가 이를 격파하고 마침내 양분(襄賁-동해군 양분현)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지나는 길에 잔륙(殘戮-살륙)한 곳이 많았다

때마침 장막(張邈)이 진궁(陳宮)과 함께 여포(呂布)를 맞아들이자 군현들이 모두 호응했다. 순욱과 정욱은 견성을 보전하고 범(范-동군 범현), 동아(東阿-동군 동아현) 2현을 굳게 지키니 이에 태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왔다. 여포가 당도하여 견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서쪽으로 가서 복양(濮陽)에 주둔했다. 

“여포가 하루아침에 한 주(州)를 얻었으나, 동평(東平-연주 동평국)을 점거하고 항보(亢父-연주 임성국 항보현)와 태산의 길을 끊은 채 험지에서 나를 요격하지 못하고 복양에 주둔했으니, 나는 그가 할 수 있는 바가 없음을 알겠다.” 

태조가 진군해서 복양을 포위해 여포를 공격했는데, 전씨가 내통해서 태조는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태조는 동문을 불태워 돌아갈 뜻이 없음을 보였지만 여포도 출병해 싸우면서 기병으로 청주병을 공격하면서 청주병이 달아나자 태조의 진영이 혼란에 빠져 패하게 되었다.

여포의 기병이 태조를 붙잡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조조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가 노란 말을 타고 달아나는 자가 조조라고 말해 위기에 벗어났는데, 태조가 말을 달려 불길이 있는 동문을 벗어나다가 말에서 떨어져 왼쪽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이 때 사마였던 누이는 태조를 부축해 말에 오르게 해 이끌고 빠져나왔다.

(태조가) 둔영에 도착하기 전 제장들은 태조가 보이지 않자 모두 두려워했다. 이에 태조가 친히 군사들을 위로하고 군중에 영을 내려 속히 공구(攻具-공성 무기)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여포를 공격하여 백여 일 동안 서로 대치했다. 황충(蝗蟲-메뚜기)이 일어 백성들이 크게 굶주리고 여포의 양식 또한 소진되니 각각 군을 이끌고 물러났다.

가을 9월, 태조가 견성으로 돌아갔다. 여포는 승씨(乘氏-연주 제음군 승씨현)에 이르러 그 현 사람인 이진(李進)에게 격파되자, 동쪽으로 가서 산양(山陽-연주 산양군)에 주둔했다. 이때 원소가 사람을 보내 태조를 설득하여 화친을 맺고자 했다. 태조는 이제 막 연주(兗州)를 잃었고 군식(軍食-군량)이 다하였으므로 이를 허락하려 했다. 그러나 정욱이 태조를 저지하니 이에 따랐다. 
 겨울 10월, 태조가 동아(東阿)에 이르렀다
이해, 곡식 1곡(160kg)이 50여만 전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이에 관원과 군사 중에 새로 모집한 자를 해산했다.
도겸이 죽고 유비가 이를 대신했다.

흥평 2년(195년) 봄, 정도(定陶-제음군 정도현)를 습격했다. 제음태수 오자(吳資)가 남성(南城)을 지키니 함락시키지 못했다.때마침 여포가 도착하자 또한 여포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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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년 봄 정월, 후장군(사방장군중에 하나로 3품정도의 고급장군 그리고 후방을 담당하는 역활)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 하내태수 , 발해태수 원소, 진류태수 장막, 동군태수 교모, 산양태수 원유, 제북상(제북 태수) 포신이 동시에 함께 군사를 일으켰는데 그 무리가 각각 수 만에 이르렀고 원소를 추대해 맹주로 삼았다. 조조는 분무장군(잡호장군 중에 하나 큰 의미가 없다 4품) 직을 대행했다.

2월, 동탁은 (원소 등이) 군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황제를 옮겨 장안에 도읍했다. 
동탁은 낙양에 남아 주둔하며 궁실을 불태웠다. 이때 원소는 하내(河內)에, 장막, 유대, 교모, 원유는 산조(酸棗-진류군 산조현)에, 원술은 남양(南陽-형주 남양군)에, 공주는 영천(潁川-예주 영천군)에 주둔하고 있었고 한복은 업(鄴-기주 위군 업현)에 있었다. 동탁군이 강하여 원소 등은 감히 앞장서서 진군하지 못했다. 
 

 

태조(조조)가 말했다, 

“의병을 일으킨 것은 폭란(暴亂)을 징벌하고자 한 것이오. 대군이 이미 모였는데 제군들은 무엇을 주저하시오?  만약 동탁이 산동병(태산쪽)이 봉기했다는 것을 듣고 조정의 권위에 의지하고 이주(二周-서주와 동주; 장안과 낙양)의 험고함에 기대어 군사를 동쪽으로 보내어 천하를 지배하려했다면 , 비록 무도(無道)하게 이를 행했다 하더라도 족히 근심거리가 되었을 것이오.

(그러나) 이제 궁실을 불태우고 천자를 겁박해 수도를 옮겨 해내(海內-천하)가 진동하여 돌아갈 곳을 모르니 (무슨말인지 모르겠음- 동탁의 천도는 민심과 정통성이 연합군으로 향한다는 뜻인듯?)이는 하늘이 그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오. 한 번의 싸움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오

그리고는 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장차 성고(成皐-하남군 성고현)를 점거하려 했다. 장막이 장수 위자(衛茲)에게 군사를 나누어 주어 태조를 뒤따르게 했다. 

형양(滎陽-하남군 형양현)의 변수(汴水-황하의 지류)에 도착해 동탁의 장수 서영(徐榮)과 조우하여 싸웠으나 불리(不利)하여, 죽거나 다친 사졸들이 매우 많았다. 태조는 날아온 화살에 맞았고 타고 있던 말이 상처를 입었는데, 종제(사촌동생)인 조홍(曹洪)이 태조에게 말을 주어 밤중에 달아날 수 있었다. 서영은 태조가 이끄는 군사가 적은데도 온종일 역전(力戰-힘써 싸움)하는 것을 보고 산조(酸棗 진류군 산조현)는 쉽게 공략할 수 없다고 여겨 또한 군을 이끌고 돌아갔다.

태조가 산조(酸棗)에 도착했는데, 여러 군의 군사가 10여 만에 이르렀으나 날마다 술을 내어 성대한 주연을 베풀며 진격하려 하지 않았다. 태조가 이를 질책하며 계책을 제시했다, 
 

“제군(諸君)들은 내 계책을 들어보시오. 발해(勃海-발해태수 원소)는 하내의 군사를 이끌고 맹진(孟津)에 임하게 하고, 산조(酸棗)의 제장들은 성고(成皐)를 지키며 오창(敖倉-형양 북서쪽에 있던 양식저장창고)을 점거하고 환원(轘轅), 태곡(太谷)을 틀어막아 험요지 전부를 제압하며(※환원, 태곡은 낙양 남동쪽의 요충지), 원장군(후장군 원술)은 남양의 군사를 이끌고 단(丹-남양군 단수丹水현), 석(析-남양군 석현)에 주둔하여 무관(武關)으로 들어가게 해 삼보(三輔-장안 일대)를 뒤흔드는 것이오. 

 

모두 보루를 높이고 벽을 깊게 파 더불어 싸우지 않으며, 의병의 숫자를 늘려 천하에 형세를 과시하며 정의로써 역적을 토벌한다면 천하는 어렵지않게 평정될수 있을것이요. 지금 군사가 의(義)로 일어났으나 의심을 품은 채 진격하지 않아 천하의 바람을 저버리고 있으니 삼가 생각컨대 제군들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야 하오.” 

장막 등은 이 계책을 쓸 수 없었다.
 태조의 군사가 적었으므로 하후돈(夏侯惇) 등과 함께 양주(揚州)로 가서 모병하니 (양주)자사 진온(陳溫), 단양태수 주흔(周昕)이 군사 4천여 명을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용항(龍亢-예주 패국 용항현)에 당도하자 사졸들이 다수 모반했다. 질(銍-패국 질현), 건평(建平-패국 건평현)에 이르러 다시 군사 천여 명을 모으고 진군하여 하내에 주둔했다.
 

유대와 교모가 서로 미워하여 유대가 교모를 죽이고, 왕굉(王肱)으로 하여금 동군태수를 겸하게 했다.

 원소는 한복과 함께 유주목 유우(劉虞)를 황제로 세우려고 모의했는데 태조는 이를 거절했다. 
 
또한 원소가 일찍이 옥인(玉印-옥쇄) 하나를 얻었는데 태조와 함께 앉아 있는 자리에서 팔꿈치를 향해 들어 보였다.
이 때문에 태조가 그를 비웃고 미워했다. 
 
(191년) 봄, 원소와 한복이 마침내 유우를 황제로 세우려 했으나 유우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름 4월, 동탁이 장안으로 돌아왔다.
 
가을 7월, 원소가 한복을 위협해 기주를 차지했다. 
 
흑산적 우독(于毒), 백요(白繞), 수고(眭固;휴고) 등 10여 만 무리가 위군(魏郡-기주 위군), 동군(東郡-연주 동군)을 침략했다. 왕굉(王肱)이 이를 막지 못하자 태조가 군을 이끌고 동군(東郡)으로 들어가 복양(濮陽-동군 복양현)에서 백요를 격파했다. 이에 원소가 표를 올려 태조를 동군태수로 삼으니 동무양(東武陽-동군 동무양현)을 다스리도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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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 태깅 (qr)

나 자신 myself2022. 12. 1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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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ino 새로운 태깅방법을 알았다

아무리 밥먹으러 가는길이 멀긴해도 10시20분에 끝내고 밥먹으러 가는팀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ino라는 장애물이있었는대
오늘 ino를 태깅하는법을 알았다
이미 카톡방에 작업종료위치 qr코드가 있었고
그걸 같은 팀원 한명과 서로 10시50분에 찍어주는거였다...
qr코드 인식이 사진으로도 가능하고 nfc처럼 태깅도 가능하다
이래도되나 싶긴한대 참 편하긴하다..

또 할말은
어떤 날 ino태깅이 안될때
관리자에게 말해서 qr코드로 출석을 체킹하는 기능이 있다는거다

고로 다음에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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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접 해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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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건국을 한 무제 조조는 자는 맹덕이고 패국 초현(예주)사람으로 한나라 개국공신 조참(사실상 조숭만)의 후예라고 한다

조조의 친아버지는 조숭이고

조숭(하후씨인듯..)은 조등이라는 환관의 (환제 옹립) 양자다

ORIANG님 티스토리 출처

조조는 어렷을때 부터 눈치가 빠르고 민첩 및 권모술수에 능했다 또 사내다움을 뽐내며 멋대로 놀기를 좋아해 

덕행과 학문을 소홀히했다

20살때 효렴(유교적 덕목으로 인재추천하는 제도)으로 낭(황제 시종)이 됬다가 수도 낙양의 북부에 위(현령 보조로 치안담당)가 되었다가 돈구령(연주 동군 돈구현)의 현령이 되었다가 조정으로 불려가 의랑(황제에 물음에 대답하는 고문관)이 되었다

183 or 18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기도위(황제 호위 무관)로 임명되어 영천의 황건적을 토벌하고 그 상으로 제남국(청주 서쪽)의 상(태수)이 되었다 

제남국에서 10여 개의 현이 있었는데 장리(현령 보좌관)들 다수가 귀척,귀족(황제의 인척)들에 아부하며 뇌물을 받고 직책을 파는일이 많아서

조조가 이에 그 중 8명을 면직시켰다

음사(민간 무속 행위)를 금하여 끊고 간사한 자들은 달아나 숨으니

제남국의 질서가 안정되었다

그 뒤,  낙양으로불려 돌아가 동군 태수(복양)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금성(양주)의 변장, 한수가 자사(지방관을 관리), 군수(郡守-군 태수)를 죽이고 모반하여 그 무리가 10여 만에 이르니 천하가 동요했다

 

조조를 불러 전군교위(황실 여덞 경비대장 중 하나)로 삼았다. 
 
188년 때마침 영제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고 태후(하태후)가 조정 일을 맡았다. 대장군 하진은 원소와 함께 환관들을 주살할 것을 모의했으나 태후가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하진이 동탁을 불러 태후를 위협하려 했으나

 

 동탁이 도착하기 전에 하진은 죽임을 당했다

 

동탁이 도착하자 황제를 폐위하여 홍농왕으로 삼고 헌제를 세워 수도에 큰 혼란이 일었다

 

동탁이 표를 올려 조조를 효기교위(근위병 대장)로 삼고 함께 대사를 의논하려 했다
이에 조조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샛길을 따라 동쪽으로 고향으로 향했다

호뢰관을 나와 중모(하남군)를 지나다가 정장(최소 단위 지역장)의 의심을 받아 붙잡혀 현으로 보내졌는데, 마을사람 중에 몰래 그를 알아보는 있었고 알아보는 사람이 현령에게 청하여 풀려났다

 

마침내 동탁이 태후와 홍농왕을 죽였다. 태조가 진류에 도착해 가산을 처분하여 의병을 모아 장차 동탁을 주살하려 했다. 겨울 12월, 처음으로 기오(연주 진류)에서 군사를 일으키니 189년이었다

 

 

이거 쓰는대만 2시간 소모한듯 ㅡ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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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난 엄마가 사준 삼국지를 참 좋아했다

마음속은 유비를 응원하며 빨리 빨리 한장씩 넘겨가면서

다음 스토리를 원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땐 삼국지5부터 게임을 시작하여 좀 더 삼국지를 좋아하게됬고 

마지막에는 진짜 삼국지 내용이 궁금하여  삼국지 정사를 읽게 되었다~

 

삼국지 정사란?

촉한말 관료인 진수가 쓴 책으로 쓸때는 진이 삼국 통일후에 쓰여진 책으로 

인물들에 대해 위 촉 오로 나누어서 썻다

(후에 배송지라는 송나라 사람이 진수의 책에 각주? 평을 달았다)

간결하고 소박하고 솔직한 느낌의 역사서입니다

 

진의 역사아래 써서 진의 사마씨 일가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

또 진의 역사서의 진서에는 진수의 인물평이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는 점도 있다는 점이 신뢰성이 좀 떨어진다고 보는대

진서의 진수열전을 각주 및 평에서는 평가에 사적인 감정을 넣은그런사람은 아니라고 되있내여 

 

 

삼국지 정사보는 곳 http://rexhistoria.net/

 

정사삼국지

 

rexhistoria.net

 

이제 삼국지 진짜 인물을 한명씩 써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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