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가 공을 영(領-겸직의 의미) 기주목(冀州牧)으로 임명하자 공이 연주목은 반납했다.
공이 업을 포위했을 때 원담이 감릉(甘陵), 안평(安平), 발해(勃海), 하간(河間)을 공략하여 차지했다. 원상이 패하여 중산(中山)으로 물러나자 원담이 이를 공격했고, 원상이 고안(故安-유주 탁군 고안현)으로 달아나자 (원담이) 그 무리를 아울렀다. 공이 원담에게 서신을 보내, 약속을 어긴 것을 꾸짖으며 혼인관계를 끊었고, 딸을 (원담에게로) 돌려보낸 뒤 진군했다. 원담이 이를 두려워하여 평원을 함락했다가 물러나 남피(南皮)를 지켰다.
12월, 공이 평원으로 입성하고 여러 현들을 공략해 평정했다.
10년(205년) 봄 정월, 원담을 공격해 격파하고 원담을 참수하고 그 처자를 죽이니 기주가 평정되었다.
하령(下令)하기를,
“원씨와 함께 악을 저지른 자도 더불어 경시(更始-고쳐서 다시 시작함)하도록 하라”고 했다.
백성들이 사사로이 복수하지 못하도록 하고, 후장(厚葬-호화로운 장례)을 금하니 모두 법에 의거해 한결같이 하였다.
그달에 원희(袁熙)의 대장 초촉(焦觸), 장남(張南) 등이 모반하여 원희, 원상을 공격하자, 원희, 원상은 삼군(三郡)의 오환(烏丸)에게로 달아났다. 초촉 등이 그 현을 들어 항복하자 열후에 봉했다.
당초, 원담을 토벌할 때 얼음 깨는 일을 하지 않고 달아난 백성(이 노역을 꺼려서 도망)들이 있었는데 투항 해와도 받아들이지 말도록 영을 내렸다.
얼마 후 도망갔던 백성들이 군문으로 나아가 자수하자 공이 말했다,
“너희들의 청을 들어주면 내가 영을 어기게 되고, 너희들을 죽이면 자수한 이를 죽이는 셈이 되는구나. 깊은 곳으로 돌아가 숨어서 관원들에게 붙잡히지 않도록 하라.”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떠났는데 그 뒤 결국 붙잡혔다.
여름 4월, 흑산적 장연(張燕)이 그 무리 10여 만을 이끌고 투항하니 열후에 봉했다. 고안(故安)의 조독(趙犢), 곽노(霍奴) 등이 유주자사, 탁군태수를 죽였다. 삼군의 오환이 광평(獷平)에서 선우보(鮮于輔)를 공격했다.
가을 8월, 공이 이를 정벌해 조독 등을 참수하고, 노하(潞河)를 건너 광평을 구원하자 오환이 새(塞) 밖으로 달아났다.
9월, 영을 내렸다 (※ 정제풍속령 整齊風俗令)
- 아첨하는 무리들이 당파를 짓는 것은 옛 성인들이 미워했던 일이다. 내가 듣기로, 기주(冀州)의 풍속은 아버지와 아들조차 부(무리)를 달리하여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 옛날 직불의(直不疑-전한 초 인물)는 형이 없었으나 세인들은 그가 형수를 도둑질했다고 했고, 제오백어(第五伯魚-후한 초 인물인 제오륜第五倫)가 고아에게 세 번 장가들자 과부옹(장인을 구타함)이라 했다. 왕봉(王鳳-왕망의 백부. 전한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외척)이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자 곡영(穀永)은 그를 신백(申伯-주선왕 때 명신으로 외척,충신;;)에 비유했고, 왕상(王商)이 충성스러운 말을 하자 장광(張匡)은 그가 도(道)를 그르친다고 했다. 이들 모두는 흰 것을 검은 것이라 하여 하늘을 기만하고 임금을 속인 것이다. 나는 풍속을 정제(고칠)하고자 하니 이런 네 가지 일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를 수치로 여길 것이다.
겨울 10월, 공이 업으로 돌아왔다.
당초 원소는 생질(누나의 아들)인 고간(高幹)을 병주목(幷州牧)으로 삼았었는데, 공이 업을 함락하자 고간이 투항했고 이에 고간을 (병주)자사(刺史)로 삼았다. 고간은 공이 오환을 토벌한다는 말을 듣고는, 병주를 들어 모반하여 상당태수를 붙잡고, 군사를 일으켜 호관구(壺關口)를 지켰다.
11년(206년) 봄 정월, 공이 고간을 정벌했다. 고간이 이를 듣고 그 별장(別將)을 남겨 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흉노로 들어가 선우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선우는 거절했다. 공이 호관을 석 달 동안 포위해 함락했다. 이에 고간은 형주로 달아났으나 상락도위(상락의 장교인대 변방일때는 현지태수가됨) 왕염(王琰)이 그를 붙잡아 참수했다.
가을 8월, 공이 동쪽으로 해적(海賊) 관승(管承)을 정벌해 순우(淳于-북해국 순우현)에 도착했다. 악진, 이전을 보내 이를 격파하자 관승은 바다의 섬으로 달아났다. 동해(東海)군의 양분(襄賁), 담(郯), 척(戚)현을 떼어내 낭야(瑯邪)군에 더하고, 창려군(昌慮郡)을 없앴다.
삼군(三郡)의 오환(烏丸)이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을 틈타 유주(幽州)를 격파하고 한민(漢民-한나라 백성) 10여 만 호를 약탈해 소유했다. 원소는 그 추호(부락의 우두머리)들을 세워 선우(單于)로 삼고, 먼 친척 자식을 자기 딸로 삼아 그들에게 처로 주었다. 요서(遼西) 선우 답돈(蹋頓)이 특히 강성하여 원소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원상 형제들이 그에게 귀의했고 수차례 새(塞) 안으로 들어와 해를 끼쳤다.
공이 이를 장차 정벌하고자 하여, 수로를 뚫어 호타(呼沱)로부터 고수(泒水)로 들어가게 하고 이를 평로거(平虜渠)라 명명했다. 또한 구하(泃河) 입구로부터 로하(潞河)로 들어가게 해 천주거(泉州渠)라 명명하고 바다로 통하게 했다.
12년(207년) 봄 정월, 공이 순우(淳于)로부터 업으로 돌아왔다.
2월 5일, 영을 내렸다 (※ 봉공신령 封功臣令)
- 내가 의병을 일으켜 폭란을 주살한 지 지금까지 19년이 흘렀는데, 정벌하여 반드시 이긴 것이 어찌 나의 공이겠는가? 이는 즉 현사(어진 선비) 대부(귀족)들의 공이다. 천하가 아직 모두 평정되지는 못했으니 나는 응당 현사 대부들을 맞아들여 함께 천하를 평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공로를 나 혼자 누린다면 어찌 내 마음이 편하겠는가! 시급히 공을 정해 봉작을 행하도록 하라. -
이에 큰 공신 20여 인을 봉하여 모두 열후로 삼고, 그 나머지는 각각 순서대로 봉했으며, 전사한 자의 고아는 경중에 따라 각각 차등을 두어 보답했다.
장차 북쪽으로 삼군의 오환을 정벌하려 하자 제장들이 모두 말했다,
“원상은 도망간 적에 불과하고 이적(夷狄)들은 탐욕스러울 뿐 친애함이 없으니 어찌 원상이 이들을 능히 부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깊이 들어가 정벌하면 유비가 필시 유표를 설득해 허도를 기습할 것입니다. 만에 하나 변고가 생기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오직 곽가(郭嘉)만이 유표는 필시 유비를 신임하지 못하리라 헤아려, 공에게 원정하도록 권했다.
여름 5월, 무종(無終-유주 우북평군 무종현)에 이르렀다.
가을 7월, 큰 홍수가 나서 바다에 면한 길(해안길)이 통하지 않았는데, 전주(田疇)가 향도(鄕導-길 안내자)가 되기를 청하자 공이 이를 따랐다. 군을 이끌고 노룡(盧龍)의 새(요새)를 나오니 요새 밖의 길이 끊어져 통하지 않았다.
이에 산을 파고 계곡을 메우며 500여 리를 가서 백단(白檀)을 거치고 평강(平岡)을 지나 선비정(鮮卑庭-선비족의 앞뜰, 영역이란 말로, 오환선비동이전에 의하면 당시 오원, 운중에서 동쪽으로 요수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선비정이라 부름)을 건너고 동쪽으로 유성(柳城)으로 향했다. (유성에 도착하기) 2백리 전에 적들이 이를 알아챘다. 원상, 원희는 답돈(蹋頓), 요서 선우 누반(樓班), 우북평 선우 능신저지(能臣抵之) 등과 함께 수만 기를 이끌고 맞섰다.
8월, 백랑산(白狼山)에 올랐다가 졸지에 적과 조우했는데 그 무리들이 매우 많았다. 공의 거중(車重-치중)은 후방에 있고 갑옷을 입은 자는 적으니 좌우가 모두 두려워했다. 공이 높은 곳에 올라 적의 진지가 정돈되지 못한 것을 보고는 이에 군사를 풀어 공격하며 장료(張遼)를 선봉으로 세웠다.
적군이 크게 붕괴되니 답돈과 명왕(名王-이름난 오환족 왕들) 이하를 참수하고, 투항한 호인(胡人), 한인(漢人)이 20여 만 명에 이르렀다. 요동 선우 속복환(速僕丸)과 요서, 우북평의 여러 호족들은 그 종인(種人-종족)들을 버리고 원상, 원희와 함께 요동으로 달아났는데, 그 무리들이 수천 기에 이르렀다.
당초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았다.
공이 오환을 격파하자 어떤 이가 공을 설득하기를, 끝까지 정벌하면 원상 형제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했다. 공이 말했다,
“나는 바야흐로 공손강이 원상, 원희를 참수해 그 수급을 보내오게 할 것이니 군사들을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소.”
9월, 공이 군을 이끌고 유성으로부터 돌아오자 공손강이 원상, 원희와 속복환 등을 참수해 수급을 보내왔다.
11월, 역수(易水)에 이르자 대군(代郡) 오환의 행(行-대행의 의미) 선우 보부로(普富盧)와 상군(上郡) 오환의 대행 선우 나루(那樓)가 그들의 명왕(名王)을 거느리고 와서 축하하러왔다.